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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세계’
기사 입력 2018-02-09 02:21:06  

훈춘시가지에서 서북쪽 대항구로 가는 신작로를 따라 20리 남짓 가면 보습메산과 그와 나란히 서산이 솟아있다. 두 산기슭 사이에는 맑은 연안하가 흐르고 신작로는 그 서산기슭으로 뻗었다. 두 산은 대문과 같고 그 사이는 높은 문턱과도 같다. 이 대문 밖의 마을을 어구 또는 관문취자(关内嘴子)라 하고 대문안의 마을을 골안 또는 리화(里化)라 한다. 골안에는 두개의 부락이 있는데 영안하 서쪽에 있는 부락을 서부락 또는 앞부락이라 하고 영안하 동쪽에 있는 부락을 동부락 또는 뒤부락이라 한다.

나는 골안에 학교가 없어 여덟살부터 봄, 여름, 가을철에는 맨발로, 겨울에는 토신을 신고 10리길을 걸으면서 6년간 관문취자국민우급학교를 다녔다. 바로 그때인즉 일본군국주의가 전쟁미치광이로 미쳐나 ‘대동아전쟁(즉 태평양전쟁)’을 발발하고 파쑈수단으로 황민화운동을 지독하게 내밀던 시기였다. 학교에서는 우리 말 대신 일본어를 국어로 배우고 일상생활 용어로 일본말을 쓰라고 강박하였다. 나의 소학시절은 불행하고 참담하였으며 그때 일을 회상하면 지금도 몸서리 친다.

관문취자학교는 우리 민족이 모여 꾸린 사립학교였다. 1935년 일제놈들은 <민주교육사건>을 조작하여 사립학교의 문을 닫게 하고 학교의 령도권을 빼앗아 국민학교4년, 우급학교 2년의 국민우급학교로 만들었다. 1938년 1월부터 일본어를 국어로 설치하고 조선어문을 수의과목으로 밀어놓았다. 내가 1학년에 입학하였을 때 수의과목으로 조선어문이 있어 ‘가갸’ 를 배울 수 있었다. 1941년 <국민학교규정>이 나오면서 조선어문을 페지하는 바람에 2학년부터 조선어문을 더는 배울 수 없었다. 뒤이어 일제놈들은 황민화운동의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학교 교육에서 일본어를 철저히 보급할 데 관한 지령>을 하달하여 평상시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 돌아가서도 일본어를 생활용어로 사용하라고 강박하였다.

교장선생은 성이 마가인데 일본성 가시라야로 바꾸고 일본말을 썩 잘하여 일본사람처럼 입쌀배급을 타먹으면서 황민화운동의 앞장에 섰다. 그는 일본말을 잘 배우라고 채찍질하였으며 조선말을 쓰는 것을 엄금하고 모조리 일본말을 쓰게 하였다. 시초에는 시가지학교처럼 우리 말을 쓰면 벌금 5전을 내게 하였지만 용돈을 모르는 시골아이들에게는 그대신 모진 매와 벌을 가했다.

교실마다 구석에 싸리나무 회초리를 세워놓고 일본말을 잘 배우지 않거나 우리 말을 쓰면 두 손을 내들게 하고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리거나 종아리를 때렸다. 맞으면 아프다고 소리를 쳤고 맞은 뒤에는 얼얼하고 시퍼런 멍이 들었다. 우리 말을 쓰는 학생들이 많으면 그들을 학교마당에 한데 모여놓고 무릎을 꿇고 30분~1시간 벌을 가했다. 학교마당에는 자갈이 섞여있어 무릎을 꿇고 있으면 아프고 저려 참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이꼬우빈다’라는,우리 말을 한 두 학생을 마주 세워놓고 서로 뺨치기를 하는 벌도 있었다. 이밖에 우리 말을 쓰면 화장실 소제를 하는 것도 면할 수 없었다.

일제는 이렇게 군도를 내휘두르면서 파쑈적인 고압수단으로 일본말을 강요하고 모진 매와 벌로 우리 말을 쓰지 못하게 하였는데 학교는 ‘일본말 세계’로 변하였다.

학교에 가서는 우리 말을 빼앗기고 강박에 못이겨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말을 썼지만 어머님에게서 배운 모국어, 가정에서 늘 써오던 입에 익은 정든 우리 말을 하고 싶었다. 그때 골안의 앞 뒤부락 한 50명이 어구로 통학하였다. 학교에서는 집에 돌아가서도 일본말을 쓰라고 강요하였지만 하학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면 우리 말을 자유로 했다. 10리 통학길은 그야 말로 ‘우리 말의 세계’였다.

그때의 집단부락은 집중영과 같아 자유를 빼앗겼고 부모님이 피땀으로 지은 곡식도 ‘출하’로 빼앗겼는데 남은 것은 보금자리와 우리 말 뿐이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구들에서 정다운 우리 말을 맘대로 쓸 수 있는 ‘우리 말 세계’를 진정 누릴 수 있다.

6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8.15’ 해방의 종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일본말 세계’는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나고 우리 말과 글을 도로 찾았다. 그동안 집에 돌아오면 ‘우리말 세계’였으니 글은 더러 잊었지만 우리 말은 푸르싱싱 살아있었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가갸’를 다시 한번 배우고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력사는 반세기 넘어 21세기에 들어섰다.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불면서 우리 민족은 전례없는 민족의 대이동으로 대도시에 진출하여 흩어져 살면서 바야흐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새시대에로 매진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새세대가 우리 말과 글의 문맹으로 되고 있는 것이 조선족사회가 직면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산재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는 집을 나서면 한어는 절대 강세다. 따라서 과거 집에 돌아오면 ‘우리 말 세계’의 우세언어로부터 우리 말과 한어 두가지 생활용어를 쓰면서 우리 말이 가정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새세대는 우리 말을 잘 모르다 보니 친척집에 가도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동포사회와 점차 거리가 멀어지고 조선족의 문화도 잘 모르고 민족의 감정도 희박해지면서 민족 공동체에서 부스러 떨어지게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말과 글은 우리 민족의 대물림 보배이며 우리 민족의 생명이다. 한 가정의 세대주는 이 대물림 보배를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잘 물려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식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하며 목숨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하물며 자기 가정에서 우리 말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면 조상도 모르는 무지막지한 행실이 아닌가,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고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동포사회에서도 이 문제를 홀시해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우리 민족이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다.

습근평 새시대는 대격변의 시대이며 일사천리로 비약하는 위대한 새시대이다. 이같은 시기에 우리 민족은 된장, 김치를 즐겨먹는 장민족으로, 노래와 춤을 즐기는 아리랑 민족으로, 동냥살이 하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는, 지식을 중히 여기고 교육을 중히 여기는 문명하고 희망찬 민족으로 살아남으려면 ‘우리 말 세계’를 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최석승  
료녕신문 201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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