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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드라마를 보고 든 짧은 생각(5)
8848 조회 2,682 2007.06.11			8848님의 다른 글

연개소문 드라마의 병폐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는 듯 합니다.

너무나 맹목적인 고구려 추앙과 연개소문 띄우기, 그리고 신라 비하, 백제 멸망에

관한 되도않는 억지설정, 끝까지 간간히 설정해주는 환단고기 내용들, 이럴 것이

면 드라마 방송 첫머리에 "본 드라마는 작가의 상상력을 토대로 재구성한 픽션입니

다." 는 문구라도 적어주어야 할 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는

군요. '사극'은 여타 드라마와 달리, 여러 사람들에게 그것이 실제 역사로 여기게

하는 성향이 있는것을 너무 간과하는 듯 싶습니다.

극중 고구려는 거의 신분의 구속이 없는 자유의 나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 드라마가 꼬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삼국중 신라가 골품제 때문에 가장 폐쇄적

인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긴 하지만 나머지 백제, 고구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백성들이 과도하게 착취당하는 수취체제임에는 별반 차이가 없지요. "고구려=위대

한 나라, 백제+신라=무능+협잡꾼들의 집합소" 라는 이분법적인 논리에 많은 시청

자들이 고구려에 대한 헛된 환상을 가지게 합니다.

얼마전 글에서도 쓰긴 했지만 지금의 고구려 열풍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있는 현실의 어려움에 대한 불만에 기인합니다. 물론 한국사중 고구려

가 최대의 영토를 경영했던 것에 대한 동경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도 결국 쇠멸을 반복했던 나라 중 하나입니다. 연개소문도 시대적 요구를 그럭저럭 잘 파악했

고 당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수차례 방어해 냈지만, 그 역시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 처럼 완전무결한 인간은 아닙니다. 고구려의 직접적 멸망 원인이 1차 남생, 2차

연정토라는 연개소문의 친족들임을 보면 이미 생전에 귀족들의 모순과 파벌이 생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은 외압이 아닌 내분이라는 것에 주

목해야 합니다. 스스로 분열하여 멸망한 것을 어찌 신라만 탓한단 말입니까? 그 이전에는 수 양제의 100만이 넘는 대군에도 성 하나 내 주지 않았던 고구려입니다.

이는 고구려 멸망이 외부 요인보다 내부적 요인이 더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외압에 단결은 커녕 분열하여 적국에 땅덩이를 바쳤으니 통탄할 일입니다. 고

구려 멸망 후 그리 머지 않아 당이 전성기에서 한풀 꺾인 것을 보면 더욱 아쉬운 일이지요.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묘사되고 있는 신라는 당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신라를 그리 비난한다면, 지난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의 힘을 빌어 전쟁을 대등한 위

치에서 끝낸 우리나라도 잘못이겠습니다. 북한은 형식상 초창기에는 자군의 힘으로만 싸워왔는데 말이죠. 그리고 당시에는 민족개념이 지금과 달리 매우 희박했습

니다.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와있는 수묘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동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평생 묘를 관리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것은 어불

성설입니다. 또한 삼국은 건국 초기부터 서로 싸워왔습니다. 백제도 고국원왕을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간 일이 있으며 고구려도 그 복수로 개로왕을 죽인 일이 있었

습니다. 삼국의 외교관계도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교류가 잦았으며 또 틈만 나면 서로 국경을 침략하고 약탈해 갔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나제

동맹도 고구려의 강성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 이미 백제와 신라는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본시 국가와 국가의 전쟁이 시작되면 민족감정 같

은 것은 이미 먼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사에서 신라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역사적 정통성입니다. 고구려의 유민들은 대다수가 당으로 압송되어

갔고 소수의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웠고, 또 신라에 편입되어 갔습니다. 고구려 유민들로 구성된 보덕국이 그 실체입니다. 신라는 백제의 영토와 유민을 흡수하

여 백제의 정통성을 이었고, 고구려의 유민 일부를 흡수하여 불완전 하나 고구려의 정통성 또한 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려는 신라의 귀순을 받아들이면서 그 정통성

을 이어갑니다. 고려가 발해의 유민들을 천대한 것으로 보아, 신라를 부정하고는 지금의 뿌리를 흔드는 격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폐해는 증산도나 여타 환단고기 신자들이 주는 폐해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니 다행입니다.

이제 민족주의의 폐해를 봅시다. 우리 나라는 지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반동으로 비정상적인 배타적 민족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게다가 군사독재 시절을 거

치며 그 도가 지나쳐서 전체주의의 성격까지 띄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일제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음입니다. 친일파 였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독립

운동가로 변신한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서 한 짓이 친일파를 살려주면서 교묘히 반공을 국시로 하여 이를 무마시킨 것입니다. 이 폐해는 일본군 장교

까지 지낸 자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불상사로 이어집니다. 덕분에 일본 정치의 특성인 밀실정치(이것은 군사독재와 함께 사라졌지만), 정경유착, 권위주의, 부정부

패, 관존민비 의식 등등 아직까지도 한국 정치판은 일본의 안 좋은 습성만 그대로 남겨 놓았습니다. 반공과 경제성장, 민족중흥을 표방하며 교묘히 국민들을 속인 것

이지요. 이것은 정치면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호주제, "좌익"이라는 용어의 용례, 비민주적 군대문화, 외국인 / 혼혈인에 대한 차

별, 여성문제 등이 있는데 이중 우리나라의 통합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외국인 / 혼혈인에 대한 차별입니다. 먼저 대다수 나이드신 분들의 경우 혼혈인들에게 "튀

기"라고 부르며 멸시하는 시선을 보냅니다. 그런 부모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도 자연히 그런 시선을 가지게 됩니다. 수십년 간 강조되어 온 "단일민족"의 의식이 이들

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오랑거'라는 몽골소녀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아 결국 쫒겨 나다시피 전학을 간 이야기가 실려 있더군요. 이를 보니 제 얼

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저 아이에게 핍박을 한단 말입니까? 또 저 아이는 무엇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이 땅에 살고 있는 "우

리"가 아닌 사람을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핍박하는것은 일제시대 우리가 일본인들에게 받았던 대접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또 요즘 농촌은 동남아나 중국

계 여인들과 국제결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외모가 보통 한국인들과는 다르고,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터라

또래 아이들보다 언어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 아이들 또한 학교에서 저러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저 아이들은 이 땅에서 태어났고 이 땅에서 자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자국민조차 차별하며 "우수한 한민족"을 주장할 바에야 민족개념을 파기하는 것이 낫습니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역사를 볼 때도 민족주의를 버리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그 시대상을 온전히 이해 할 수 있는 겁니다. 고조선과 열국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

려, 조선 모두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살아갔으며 사라져간 나라들입니다. 비록 패망할때는 좋지 않은 모습들을 보였으나, 그것은 전 세계의 국가사를 통틀어서 공통

으로 보이는 모습들입니다. 저 나라들 모두가 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는 겁니다. 드라마상 내내 욕먹는 신라에서도 본받을 점이 있으며, 마냥 위대해 보이는 고구려

에서도 국가를 뒤흔드는 심각한 모순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발해가 망하지 않았다면?", "조선이 세도정치기를 겪지 않았다면?", 이러한 가정들은

다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사실은 돌릴 수 없지요. 오히려 위대한 역사를 머리속에서 만들어내 자위를 할 수록 보이는건 초라한 현실 외에 없습니다. 역

사를 전공해서 그것으로 직업을 갖지 않는 이상, 역사를 볼때 중요한 것은 "과거 역사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으며 현재를 살아갈 것인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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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