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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마을을 감도는 선렬들의 충혼 기리며
기사 입력 2013-08-10 01:49:35  

청산리대첩기념비를 찾아

지난 3일 오전 8시 반경, 대학교수, 방송언론인, 문학인들로 무어진 30여명은 화룡시 룡성진 청산촌으로 향했다. 청산리대첩전적지를 답사하고 기념비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두시간여 달려 화룡에 도착하니 안내를 맡은 한창진 연변방송 화룡주재소 소장이 차에 올라탔다. 가는 도중 화룡의 특색부터 주변 림업국 상황, 청산리사건, 베개봉의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소개해주는 한창진씨의 입담이 차안을 즐겁게 해준다.

얼마 안되여 도착한 청산촌, 청산리의 원래 이름은 평양평이라고 한다. 이주초기 평양사람들이 많아서란다. 후에 산속에 둘러싸인 이곳에 소나무가 많다고 하여 푸를 “청”을 따서 “청산리(青山里)”라고 했다.

자그마한 시골마을을 가로탄 거대한 철도다리에 청산촌은 억눌린듯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길다란 철도다리는 또 화룡시에서 가장 높은 해발 1667메터의 베개봉산기슭을 휘감고있었다. 베개봉(일명 증봉산이라 함)은 장백산처럼 삼강원 즉 세개 강(해란강, 홍기하, 고동하)의 발원지이다.

우리는 청산리대첩기념비를 참관하기 앞서 해란강의 발원지 직소에 가보기로 했다. 차로 반시간 정도, 다시 도보로 한시간 정도 가면 직소가 보인다고 했다. 우리가 탄 차는 좁은 흙길을 따라 천천히 직소방향으로 달렸다. 길 량옆은 우중충한 산, 울창한 수림이였다. 일본군이 이곳에서 대패한 리유를 알것 같았다. 연도에 담비, 꿩 등도 보여 산속의 정취가 그대로 안겨왔다.

30명 정도 탑승할수 있는 큰 뻐스는 좁은 흙길을 따라 가재걸음을 한다. 계속 올라가다는 차를 돌릴수 없다며 기사아저씨는 울상이다. 결국 철도다리밑에 차를 세우고 모두들 차에서 내려 도보로 가려고 몇발자국 떼였는데 한창진씨가 막아나섰다. 직소까지 두시간 넘게 걸린다는것이다. 결국 차를 돌려 청산리대첩기념비와 만나기로 했다.

2001년 8월 31일, 청산마을옆의 작은 언덕에 높이 17.6메터의 화강암비석이 세워진다. 청산리대첩의 주역들을 기리고 그 충혼을 대를 이어 전하기 위해 세운 청산리대첩기념비이다. 청산리대첩은 1920년 10월 21부터 26일 사이 김좌진, 홍범도가 통솔하는 련합부대가 백운평, 와록구, 어랑촌, 874고지, 고동하반전투 등 수차의 격전에서 천으로 헤아리는 일본침략군을 섬멸한 전투를 말한다. “경신년대참안”은 청산리전투 대패의 보복이였다.

148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곧장 기념비를 마주한다. 보수가 잘 안되고있는지 부러진 란간도 보였고 비문을 적은 대리석판도 두쪼각으로 갈라져있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답사팀은 청산리대첩기념비앞에서 잠간 묵념을 하면서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피 흘리고 희생한 모든이들에게 경의를 드린 뒤 기념비를 둘러보았다.

점심에는 청산림장의 양림장장이 마련한 소박하면서도 푸짐한 생태음식을 맛보면서 청산리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윤길 기자
연변일보 201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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