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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치(癖痴) 예찬
기사 입력 2018-06-27 16:43:19  

'벽(癖)'이란 병이다. 어떤 물건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좋아함이 지나치면 '즐긴다'고 한다. 즐기는 사람이 즐김이 지나치면 이를 '벽'이라고 한다. 즉 벽은 버릇이요, 기호요, 취미요. 습성을 가리키나 원래는 좋지 않은 기호요 나쁜 버릇을 가리킨다.

'벽'과 비슷한 뜻으로 바보라는 뜻의 '치(痴)'도 많이 보인다. 모두 무엇에 대한 기호가 지나쳐 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태가 된 것을 뜻한다. '치'는 상식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벽'에 대한 일반의 반응을 반영한다.

'벽'이니 '치'니 '자(疵)'니 하는 것은 모두 무엇에 대한 기호가 지나쳐서 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태가 된 것을 뜻한다.

예로부터 '벽'이나 '치'로 불리기를 좋아하고 '벽'이나 '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허다한 문인들이 '벽치'를 찬미하고 있었다. 그래서 청나라 초기의 소장가 장조(涨潮)는 이렇게 반문했다.

"치(痴), 우(愚), 졸(拙),광(狂), 이 네 단어는 모두 글자의 의미가 좋은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마다 여기에 속하기를 즐긴다. 과연 멍청하고 어리석고 졸박하고 미친 듯이 사는 인생이 뭐가 좋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할까?

명나라 때 오종선(吳從善)은 그의 "소창자기(小窓自紀"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팔았어도 이 멍청함[痴]은 다 못 팔았고, 평생을 고쳤어도 이 고질[癖]은 못 고쳤다. 탕태사(湯太史)도 '사람은 벽이 없을 수 없다고 했고, 원석공(袁石公)은 '사람은 치가 없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럴진대 멍청함은 팔 필요가 없고, 고질은 고칠 필요가 없다."

명말 문장가 장대(張岱)도 "오이인전 서문(五異人傳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 벽'이 없으면 더불어 사귈 수가 없다. 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흠'이 없으면 더불어 사귈 것이 없다. 참된 기운이 없는 까닭이다."

무언가에 병적으로 미친 사람만이 깊은 정과 참된 기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청나라 초기의 소장가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 된다. 돌에는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굴이 없어서는 안 되고, 사람은 '벽'이 없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득실을 떠나 맹목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다.

원굉도(袁宏道)는 "병사(瓶史)"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을 살펴보니, 그 말이 맛이 없고 생김새가 가증스런 사람은 모두 벽(癖)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온전히 미친 사람만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청(清)조 시기의 시인 노존심(盧存心)의 "납담蜡谈"에 이런 말이 있다.

"아름다운 옥일수록 흠집(瑕)이 많고, 뛰어난 사람일수록 병통(癖)이 많다. 흠집이 없으면 아름답지가 않고, 그저 옥처럼 생긴 돌덩이가 된다. 병통이 없고는 기이함도 없게 되어 끝내 호걸이 되지 못한다."

그 벽이야말로 그 사람의 기특함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는 뜻일 것이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벽과 치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동중서(董仲舒)나 두예(杜預)는 학문에 벽이 있던 사람이고, 왕발(王勃)과 이하(李賀)는 시에 벽이 있던 사람이다. 사령운은 유람에 벽이 있었고, 미불은 돌에 벽이 있었으며, 왕휘지(王徽之)는 대나무에 벽이 있었던 사람이다.

'문벽(文癖)'에는 일생을 글짓기로 살아온 노신이 있고 '서벽(書癖)'에는 책을 제 목숨보다 중히 여긴 천일각(天一閣)의 주인 범흠(范欽)이 있으며 '사벽(史癖)'에는 궁형에도 뜻을 버리지 않고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이 있는가 하면 귀까지 멀어가며 역사연구에 깊이 빠진 곽말약이 있다. '문벽'이든 '서벽'이든 '사벽' 오직 '벽성(癖性)'을 버리지 않을 때에라야 글을 써낼 수 있고 책을 모을 수 있으며 역사를 연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벽'이 있음으로 하여 그들은 시를 읊고 글을 쓰고 책을 모으는 문인생활에서 적극적이고 낙관적이며 적막과 고독을 즐기면서 책 속에 빠지고 책에 미치는 한 몸으로 학업을 연구하는 고아한 정서를 보여주었다.

어찌 중국뿐이랴. 우리 민족의 선조들 가운데도 빼어난 '벽'이나 '치'를 가진 이들이 수두룩하다.

조선 후기 화가 남계우(1811-1888)는 한마디로 벽치(癖痴)다. 그의 나비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쁜 나비를 보면 갓 쓰고 도포 입은 채 십 리 길도 마다 않고 쫓아가 잡아서 책갈피에 끼워놓고 그리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나비에 미쳐 평생 나비만 그렸고 마침내 나비 그림의 달인이 됐다. 그래서 '남나비'란 별칭까지 얻었다.

수만 권을 독파하고 눈병에 걸려서까지 실눈으로 책을 읽어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은 바보)라 불린 이덕무(李德懋), 장서가 이명오는 빌려 본 책을 주인에게 돌려보내며 정인을 이별하는 것이상의 아픔을 절절히 노래하는 등 '서치'의 행태를 보였다.

이들은 모두 예술에 득실을 잊고, 영욕을 잊고, 사생을 잊었던 사람들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았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했다 남이 뭐라 하든 말든, 출세에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자신을 사로잡은 일에 전심을 다해 몰두한 사람들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벽이 있는 자만이 독창적인 정신을 갖춘 전문가"라는 예찬론을 폈다. 그는 꽃에 미친 규장각 서리 출신 김덕형의 꽃 그림책 "백화보" 서문에 이렇게 썼다.

"'벽'이 없는 사람은 버림 받은 자이다.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건 '벽'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벽치가 되라. 자신 안에 잠자던 거인이 깨어나리라." 누군가의 참진리의 말씀이다. 오늘도 벽치로 될수 있는 자야말로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칠수 있다.


김춘식
흑룡강신문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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